[화제]한 순간에 깨진 '백만장자의 꿈'

"당구 이야기를 해보자. 그가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 큐를 처음 만져본 그가 200점을 치는 선배와 맞붙었다. 누구도 그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꼬박 2박3일간 잠도 자지 않으면서 선배를 물고 늘어졌다. 무서운 몰입과 승부욕이었다. 결국 최종 승자는 그였다. 내가 아는 그는 좌절하거나 실패한 적이 없었고 아예 실패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중 과일빙수 전문점 '아이스베리'를 창업해 대학생 성공신화를 일군 김모씨(30)의 학과 선배는 그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99년 김씨는 '단돈' 2천만원으로 신촌 떡볶이집을 인수해 과일빙수 가게를 창업했다. 자본금 2천만원은 주식투자 등으로 모은 돈이었다.

도박에 빠져 수십억 탕진

'빙수는 여름에만 먹는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그는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서울 강남을 비롯해 전국 30여개의 체인점을 구축했고 TV와 여성 월간지 등 수많은 매체에서 그를 주목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타고난 승부욕을 결합해 만들어낸 성공기였다.

벌어둔 돈이 바닥을 드러내자 2003년 1월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장모씨(28-여)에게 명의이전이 불가능한 아이스베리 코엑스점을 인수하라고 속여 15억원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해 9월에는 아이스베리의 상표권마저 처분했다. 심지어 자신의 은사인 경영학과 교수들로부터 투자받은 9억여원도 도박 빚을 갚는데 써버리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그는 결국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익명을 요구한 모 창업투자회사 고문은 "최근 몇몇 젊은 사업가나 벤처 기업인들이 드러내고 있는 도덕 불감증은 기성세대의 그것을 능가한다"면서 "벤처캐피털리스트(투자심사역)들이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사업모델이나 아이템보다 오히려 경영자의 품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이런 이유"라고 밝혔다.

서울대 역사상 최연소 나이(28세)에 박사학위를 따낸 장성익씨(37)의 몰락도 김씨가 걸어온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95년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딴 장씨는 대기업과 연구소의 숱한 영입제의를 거절하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CCTV로 촬영한 영상을 테이프 대신 디지털 신호로 저장, 재생시키는 디지털영상 솔루션 개발기술이 그의 무기였다. 1996년 10월 3R는 이렇게 설립됐다.

디지털영상 압축기술의 미래를 내다본 서울대 공대교수 19명과 동료들이 자본금 2억8천만원을 모아 장씨에게 힘을 실어줬다. 몇 차례의 증자과정에 다른 교수들도 참여했고 3R의 주주 가운데 서울대 교수는 100명으로 늘어났다.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0년 코스닥에 등록할 당시에는 1백억원 공모를 시작한 지 이틀만에 3천7백74억원의 청약자금이 몰리기도 했다. 액면가 5,000원짜리 3R주식은 13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최연소 박사의 횡령과 배임

승승장구하던 장씨의 몰락 원인은 무리한 사업확장. 특히 2002년 초 무리하게 당시 하이닉스 계열사였던 통신장비 생산업체 현대시스콤을 5백90억원에 인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M&A)은 2002년과 2003년 각각 3백86억원과 3백80억원의 손실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 유동성이 악화되자 장씨는 결국 편법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은행대출을 받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유령기업)'를 설립한 뒤 3R의 예금과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것. 명백한 횡령과 배임이었다.

결국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는 지난 11월 15일 이런 식으로 모두 1백68억원에 달하는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장씨를 구속기소했다. 천재적인 두뇌로 시장을 사로잡는 기술개발에 성공한 장씨였지만 경영 및 회계의 투명성이 요구되는 상장회사 경영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던 셈이다.

금융조사부 차맹기 검사는 "개인회사라면 몰라도 주주가 주인인 상장기업에서 회사자금을 무분별하게 전용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회사 자금난을 타개하려 했던 장씨의 노력은 인정되지만 이는 편법이 아니라 기술개발이나 영업권 개척 같은 정당한 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닷컴 CEO 쓸쓸히 '역사 속으로'

아이스베리 김씨나 3R의 장성익씨처럼 젊은 나이에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본 경우는 드물지 않다.

1999년 서울대생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을 무려 76배로 불려 창업해 화제를 모았던 벤처기업 아이패스의 최봉진 전 대표 역시 오 전 사장과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혐의를 받고 쇠고랑을 찼다.

최 전 대표의 아이패스 주식은 1999년 코스닥 및 장외 주식시장에서 역시 황제주로 떠올랐지만 검찰의 수사결과 거짓 사업보고서와 허위공시를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닷컴 CEO 1세대'인 인츠닷컴의 이진성 전 사장(37)이나 인터넷 동창회 붐을 몰고왔던 아이러브스쿨의 김영삼 전 대표(36) 역시 30대 전후반에 획기적인 사업모델로 벤처 열풍을 주도했던 주인공들이지만 경영분쟁이나 사기 등에 휘말려 쓸쓸히 퇴장한 경우다.

이처럼 한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타로 떠오른 젊은 사업가들의 몰락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들의 경험부족과 도덕성 결여를 공통적으로 꼬집는다.

KTB네트워크 벤처투자1팀의 김창규 팀장은 "언론의 조명을 받는 젊은 사업가 가운데 대부분은 다른 직장 경력이 짧거나 아예 없는 등 사회경험이 부족한 것이 약점"이라면서 "경험이 없다보니 위기관리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독선적인 경영 때문에 스스로 위기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조금 뜨면 기업의 펀더멘털보다는 '꼼수'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도덕적 해이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