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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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공개가 의원생활 중 가장 큰 보람 8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

많은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들이 떡값, 즉 뇌물을 받아 자리를 떠난다. 그런데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떡을 먹기는커녕 단지 ‘안기부 X파일’에 나오는 떡값 받은 검사명단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유죄가 확정돼 지난 2월 14일 19대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조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이들이 노 전 의원의 3·1절 사면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며 지난 2월 20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3·1절 특별사면을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노회찬 전 의원으로부터 그의 심정과 진보정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언어의 마술사, 인터뷰의 달인이라는 그도 이번 판결은 좀 당혹스러운지, 그리고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로서도 어깨가 무거운지 전처럼 현란한 언어는 구사하지 않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소크라테스처럼 “악법도 법이다”라며 순순히 받아들이는가.
“이건 사법판결이란 이름의 폭력이다. 국민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앞두고 159명의 의원이 선고연기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질 거라고 봤는데 판결이 강행되어서 놀랐다. 처음 유죄를 내렸던 1심도 판결문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선고유예가 마땅하나, 과거에 나의 민주화운동 전과 때문에 선고유예가 불가하고 이 법에는 벌금형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실형을 내린다고 변명하듯 판결문에 적었다. 그래서 법을 개정하려고 152명이 공동발의한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사법권의 과도한 횡포이자 폭력이다. 폐암환자 수술하라고 하니 멀쩡한 위를 제거한 형국이다.”

정확한 죄명이 뭔가.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이 있지 않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다. 보도자료로 기자들에게 준 것은 면책특권의 보호대상인데 인터넷에 올린 것은 걸러지지 않고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면책특권으로 보호받을 걸 넘어선 게 됐다는 게 판결 요지다. 그날 회의는 (국회) TV로 전 국민에게 중계가 됐다. 몇십만명이 그 TV를 봤고 인터넷에 올려서 본 것은 당시 조회수가 1만4000건에 불과했다. 대법원 홈페이지를 보니 그들도 보도자료를 대법원 홈페이지에 그대로 올리고 있더라. 또 국회의원의 공적 역할을 감안할 때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될 수 있는데 뇌물수수가 사생활이라니….”

다들 X파일, X파일 해도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삼성측에서 대선후보 등과 검찰 고위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준 ‘건국 이래 최대의 권·경·검·언 유착사건’이다. 당시 안기부에서 보유한 불법도청 테이프는 280여개가 있었다. 그 중 1997년 4·9·10월의 테이프 3개를 녹취록으로 보고 테이프로 확인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이학수 부회장, 당시 주미대사로서 대권과 연관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등장하고 돈을 받은 사람으로는 정치권과 검찰의 고위관계자들도 등장한다. 실명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위직 검사들에게 돈을 준다는 내용이 2005년 7월에 보도됐다. 8월 18일 열린 법사위에 법무부 장관을 대신해서 ‘떡값검사’로 의혹을 받는 법무부 차관이 나와 있었다. 당시 법사위원이라 참석해 ‘당신의 이름이 X파일에 들어간 걸 알았느냐’니까 ‘알았다’더라. 어떻게 알았느냐니까 대검 수사부에서 알려줬다고 했다. 세상에, 수사대상에게 수사는 하지 않고 당신 이름이 들어가니까 조심하라고 알려준 거다. 법사위 회의에서 본인이 증언한 내용이다. 나는 그걸 이야기했다고 국회의원직 박탈됐는데 정작 의혹이 되는 사람에게 알려준 수사검사는 누군지 밝혀지지도 않았고 처벌받지도 않았다.

대기업의 문제는 떡값만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절대 재벌해체나 재벌 혐오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도 인정한다. 대기업에 바라는 것은 헌법정신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독일 벤츠의 경우에 그들의 노사관계는 교과서 수준이다. 노사관계는 물론 하청업체와의 관계를 모범적으로 운영해도 얼마든지 돈을 벌고 국기 이미지도 높일 수 있다. 경영능력으로 돈을 벌어야지 편법으로, 폭력적으로 벌면 안 된다. 우리 대기업들이 역대 대통령이나 검찰에게 보낸 뇌물과 비자금만 사원들과 하청업체에 공정하게 돌려주면 된다. 우리 대기업은 마치 직원이나 하청업체들을 돈 몇 푼 안주고 실컷 부려먹어도 되는 친인척이나 머슴으로 아는 것 같다.”

휴대폰이 아이폰이다. 삼성 제품은 안 쓰나.
“한때는 삼성제품도 썼다. 그런데 아이폰 성능이 더 좋고 편리해서 쓸 뿐이다.”

지난 2월 19일에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나도 그와 비슷한 심정이다. 유 전 장관은 나에게도 항상 60세 이전에 정치를 그만두라고 종용했다. 한편으로 그의 용기가 부럽고 그가 떠나는 우리 정치현실이 안타깝다. 정치는 존재의 문제다. 진보정치가 뿌리를 내리기 힘든 현실에서 그런 결정과 결단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게다. 유능하고 훌륭한 정치인이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가 많아야 하는데….”

진보정당이나 진보세력의 앞날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걱정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세력들이 스스로 작년과 같이 붕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것은 보수의 승리가 아니다. 시대는 경제민주화와 역사의 진보를 요구하는데, 우리 진보세력이 준비와 역량이 부족해 승리를 내준 것이다. 유시민과 노회찬이 아니더라도 진보는 시대 요구에 따라 더 깊게 뿌리 내려야 한다. 그동안의 잘못된 고집, 국민과 소통하는 행동양식 등 낡은 악습을 타파하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거듭나야 한다. 대수술을 감행하거나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암울할 때 희망이 싹튼다고 믿는다.”

진짜 희망이 있다고 보나.
“요즘 나를 아끼는 선배들이 진보 그만하고 심상정과 같이 민주당에 가서 새판을 짜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김문수 지사처럼 새누리당에 가서 더 큰 변화를 하라고도 한다. 다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해주시는 조언이지만 사회가 잘 되려면 힘 있고 건강한 진보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면함이 없다. 내가 거름이 되어서라도 싹을 틔우고 후배들이 꽃 피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고 싶다.”

최근 진보가 대중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이유가 뭘까.
“진보란 단어 자체가 우리나라에선 좌파, 종북주의와 동일시되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아예 당명에서도 진보를 빼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0년 서울시장 출마할 때 내가 0세에서 4세까지 무상보육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황당무계한 정책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박근혜 후보는 더 세게 5세까지 무상보육을 내놓아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진보진영이 20~30년 전의 NL·PD 등 자기 편가르기나 이념문제만 떠드니 국민 호응을 얻기 어렵다, 이젠 우리 사회를 어떤 복지국가로 만들어나가겠다는 총체적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할 때다. 진보진영의 현대화가 시급하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진보의 현대화란 무엇을 의미하나.“외국에서는 ‘진보’란 말을 안 쓴다. 당의 명칭도 사회민주주의당이나 노동당 등이다. 이젠 진보란 말이 암호 같은 용어가 됐다. 스웨덴·핀란드 스타일의 모델과 방식을 참고로 해야 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철저히 민주주의가 보장되면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쳐가고 진정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사회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복지국가가 목표라면 속도와 방향의 문제가 있겠지만 그 길은 사회민주주의밖에 없다. 미국 같은 강대국도 의료보장 등에서 복지국가가 못되는 이유는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회민주주의의 실현이 필요하다.”

이제 떠났지만 경험해보니 국회의원은 어떤 자리인가.
“한국의 국회의원은 권한이 강하다. 그래서 잘못하면 국민 민폐가 되고 과거엔 정권의 시녀 역할도 했다.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출세와 명예 수단으로 악용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회개혁에 도움이 되는 의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종인 박사도 요즘은 국정감사에 임하는 국회의원의 자세가 전문적이고 공부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전에는 ‘농땡이’ 치다가 시험 전날에 반짝 공부하는 학생 같았는데…. 그래도 아직 선진국 국회의원과 비교하면 멀었다.”

국회의원 생활 중 가장 보람찬 일은 뭔가.
“당연히 X파일 공개다. 거대 권력의 비리를 공개해 터무니없는 유언비어가 아니라 현실이란 것을 보여줘 국민과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심어줬다고 자부한다. 다시 8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아쉬운 점은.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은 인재(人災)다. 막고 해결하려면 가능한 일이다. 통계자료를 보면 서울에서만도 1년에 수만개 가게에 이르는 창업식 점포가 생기고 70%가 1년 안에 망한단다. 자영업은 미국의 4배로 포화상태다. 자영업이 느는 것은 고용이 불안하고 직장이 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행정부와 국회에서 법률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업도 그렇고 병원도 그렇고 소수의 강자가 독식하니 기업빚은 50% 감소했는데 가계빚은 4배나 증가했다. 경제는 정치가 잘되면 해결된다. 정치가 그만큼 중요하다. 연봉 1억원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비정규직 해결법을 못 만든 것은 직무유기다. 마치 교통순경이 그 직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만성교통체증을 무시하고 불법을 눈감는 것처럼 국회의원들도 그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불의에 눈감는다.”

세상 인심이 좀 무섭긴하다. 벌써 노원 병 지역 재·보궐선거 후보 명단이 나돈다.
“새누리당이 동네마다 있는 파리바케뜨라면 민주당은 숫자가 조금 적은 뚜레쥬르다. 진보당은 동네 빵집이다. 나까지 포함해 국회의원이 모두 7석이고 지역구는 3석이었는데 그나마 1석이 빠진 거다. 즉 매장 3개를 운영하던 빵집 매장 한 개가 문 닫은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던데 이건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골목상권 보호 차원에서도 제 지역구인 노원 병은 진보정의당이 맡아야 한다. 우리 지역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처럼 진보정의당 적합지역이라고 믿는다.”

안철수 전 교수도 그 지역에 나선다는 소문도 있다.
“안철수 전 교수는 한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인데 더 큰 곳에서 더 큰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혁신을 주장한다면 새누리당의 지역구에 나서 새누리당 의석을 줄여야 하지 않는가. 훌륭한 분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 또 다른 당들도 조혈세포가 없는지 자기 피를 만들지 못하고 외부인의 수혈을 받아 건강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국회의원직은 상실했지만 ‘국민의원’으로 승격했다.
“이번 판결은 유감이지만, 국민과 역사 앞에 무릎 꿇을 일은 아니다. 앞으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사회정의와 진리가 바로 서고 강자와 약자가 공존상생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무엇보다 진보세력 1세대로서 진보정당이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 국회의원이어서 제대로 못했던 일들을 하겠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고 연구도 할 것이다. 아직 사회적 발언력이 있는 편이니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우리 사회에 그늘과 음지를 줄이는 데 노력할 것이다.”

노 대표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 신문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안쓰러워 ‘감사합니다’라고 쓴 와이셔츠 상자를 신문수거함으로 만들어 문앞에 놓아둔단다. 새벽 4~5시에 일어나 30여년간 신문 스크랩을 하고, 기사마다 ‘동반성장, 이게 왜 안 되나?’ 등의 촌평을 쓴다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의원직 상실 기사에 어떤 촌평을 달았을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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