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연봉킹 김정우, 선수생활 최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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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의 전북 이적은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최근 프로축구 전북 현대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한 선수가 화제가 됐다. 더 이상 팀에 보탬이 되지 않는 선수를 내보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달랐다. 그는 연봉 15억원짜리 선수였다. K리그 최고 연봉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선수. 그는 김정우(31)였다. K리그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선수를 팀에서 필요없다고 하다니….

도대체 그에게, 그리고 전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3월 12일 전북 현대 김정우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2차전 중국 광저우 에버그란데와의 경기에서 슈팅을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3월 12일 전북 현대 김정우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3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2차전 중국 광저우 에버그란데와의 경기에서 슈팅을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꿈이 현실이 되다>. 서점에 출간되지 않았지만 김정우 측근이 2011년 12월 펴낸 김정우 자서전이다. 이 책에 따르면 김정우는 출생 8개월 후쯤 갑자기 경기를 일으켜 생사를 오갈 만큼 몸이 약했다. 하지만 부평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의 축구인생 20년은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표면적 방출 이유는 부상과 부진
김정우는 1999년 부평고의 전국대회 3관왕을 이끌었고, 2005년엔 울산 현대의 K리그 우승을 견인한 주역이었다.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상도 이에 못지 않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8강 진출에 일조했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사상 첫 원정 16강행을 이뤄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군인 신분(상주 상무 소속)이었던 김정우는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에서 당대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리오넬 메시(26·아르헨티나)를 전담 마크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김정우의 연봉은 95만원으로, 142억원이었던 메시와는 1만5000배나 차이가 났다.

비록 메시와의 대결에서 완패하긴 했지만 김정우는 남아공월드컵 공식 선수랭킹에서 한국 선수 최고 순위인 85위에 올랐다. 박지성(32·QPR)이 96위, 이청용(25·볼턴)이 100위였다.

현재 일본 축구대표팀 에이스 혼다 게이스케(27·CSKA 모스크바)는 김정우를 롤모델로 꼽기도 했다. 2006년부터 2년간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김정우와 한솥밥을 먹은 혼다는 “김정우는 내가 20대 초반 롤모델로 삼을 만큼 좋아하던 뛰어난 선수다. 지금의 나를 만든 선수 중 하나다. 아직도 한국 최고 미드필더인 김정우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상주에서 18골을 넣어 뼈트라이커(뼈+스트라이커)라 불린 김정우는 이듬해 K리그 최고 연봉을 받고 전북과 3년 계약을 맺었다.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K리그를 제패했던 전북은 김정우라는 날개까지 달았다. 김정우는 축구인생의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행복한 만남이 될 것으로 보였던 김정우의 전북 이적은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지난 15일 한 언론사는 “전북 김정우와 임유환이 최근 선수단을 무단이탈해 선수단과 연락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전북 구단은 곧바로 “김정우는 최강희 전북 감독과 면담 후 서울 집으로 올라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16일 대전과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김정우는 부상과 부진이 겹쳐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내가 전북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팀을 떠나고 싶어했다. 보내달라고 했다”고 결별을 인정했다. 아울러 최 감독은 “선수 본인이 팀과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지도자로서 할 일은 없다. 나머지는 구단에서 해야 한다”며 사실상 김정우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김정우가 전북과 갈라선 표면적 이유는 부상과 부진이다.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김정우는 2012시즌 개막 직전 훈련 도중 오른쪽 발목 안쪽이 두둑 하고 꺾였다. 다친 발목이 한 시즌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조급함에 다 낫지도 않은 채 복귀해 중앙수비 등 여러 포지션을 오간 게 독이 됐다. 2012년 33경기에서 5골·2도움, K리그 연봉킹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성적표였다.

올해 1월 전북의 브라질 상파울루 전지훈련에서 김정우는 이렇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프로 데뷔 후 1년 내내 부상을 달고 간 건 작년이 처음이었다. 오른발이 자꾸 신경 쓰여 슈팅도 못 때렸다. 또 부딪쳐 다칠까봐 몸싸움도 피하게 되더라. 부상도 부상이지만 말 못할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다.”

김정우는 “연말에 고려대, 상무 동기들과 만든 모임에서 함께 볼을 차며 힐링을 했다. 몸상태가 올라가고 있다. 전북에서 잘하고 싶다”고 재기를 다짐했지만 그 또한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최강희 감독과의 의견차가 결정타
올 시즌도 K리그 클래식 8경기 출전에 겨우 1도움.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5월 1일 광저우 헝다(중국)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 이후엔 그라운드에 나서지도 못했다. 김정우는 몸만큼 마음도 지쳤다.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잦은 부상으로 빠지면서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최고 연봉이 정신적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진심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료는 이번에 전북 선수단을 함께 떠난 임유환 정도뿐이었다. 그는 전북에서 사실상 외톨이였다.

6월 30일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이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남FC와의 경기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6월 30일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이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경남FC와의 경기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최근 대표팀을 이끌다가 전북으로 복귀한 최강희 감독과 면담 중 발생한 의견 차가 결국 결정타가 됐다.

김정우는 현재 이적팀을 찾고 있다.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로부터 선수단 인건비를 줄이라는 지시를 받은 전북도 ‘최고 연봉자’ 김정우를 정리 대상에 올렸다. 전북은 올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공개한 구단별 선수 평균연봉 2위(2억4633만원)다.

하지만 김정우는 워낙 몸값이 높아 이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여름 이적시장은 7월 31일까지로, 마감까지 10일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전북은 김정우 이적료를 10억원 전후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김정우의 이적료를 감당할 국내 구단을 찾기 어렵다. K리그 클래식 기업 구단인 수원 삼성과 울산 현대, FC서울도 경제 한파 속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다. 해외 이적도 김정우가 부상 중이라 난항을 겪을 수 있다. 김정우는 연봉을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북이 한 발 양보해 이적료를 내린다면 극적으로 이적이 성사될 수 있다.

이적 쉽지 않아 ‘불편한 동거’ 가능성도
전북이 김정우를 트레이드 카드로 쓸 수도 있다. 전북 입장에선 김정우를 최근 울산 골키퍼 주전경쟁에서 밀린 대표팀 넘버2 골키퍼 김영광(30)과 맞바꾸는 것도 괜찮은 거래일 수 있다. 김정우와 김영광은 에이전트가 같다. 그러나 울산이 젊은 골키퍼 김승규(23)만 믿고 김영광을 선뜻 내줄 것같지는 않다.

전북은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이적이 불발된다면 김정우를 잔류시켜야 한다. 하지만 소원해진 관계로 인해 불편한 동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북은 연봉을 일당으로 환산하면 김정우에게 하루에 약 400만원 정도를 지급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전북이 계약기간이 내년 말까지인 김정우를 일단 임의탈퇴시킬 수도 있다. 임의탈퇴 시 선수 활동이 정지되고 급여가 나가지 않는다. 이 경우 전북은 8월 말까지 이적이 가능한 중동 팀과 접촉하거나 몇 개월 더 기다렸다가 겨울 이적시장을 바라볼 수 있다.

김정우는 축구계에선 착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부평동중 1학년 때 선배들의 극심한 얼차례를 못 견디고 절친 이준기와 가출했다가 한강에서 오리배를 타고 곧바로 돌아온 것이 일탈의 전부였던 선수다. 성남 일화 소속이던 2009년 11월 30일 군 입대 하루 전까지 포항 스틸러스와 플레이오프를 뛸 만큼 책임감도 투철하다. 2010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지극히 보살펴 완치시킨 효자이기도 하다.

성격이 조용하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붙은 별명이 ‘새색시’다.

하지만 그라운드 안에서는 거친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던 선수였다. 선수생활 최대 위기를 맞은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역시 말보다는 행동인 것 같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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