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부터 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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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1629, 캔버스에 유채, 투르미술관 소장)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1629, 캔버스에 유채, 투르미술관 소장)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남은 한도 끝도 없이 깎아내린다. 자기애가 너무 강해 자신을 비판하지는 못하지만 남의 허물은 객관적인 시선이라는 핑계하에 비판한다. 남을 칭찬하는 데는 야박하지만 남을 비판하는 일에는 열을 내는 이유가 자기는 비판하는 사람보다 더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자기가 하는 일은 매사에 옳고 남이 하는 일은 매사에 틀리다.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의 최후를 그린 작품이 클로드 비뇽(Claude Vignon·1593~1670)의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다.

왕관을 쓴 남자가 쿠션에 기대앉아 손가락으로 노인을 가리키고 있고, 2명의 젊은 남자가 노인의 팔을 잡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다.

왕관을 쓴 남자는 왕이다. 그는 담비로 덧댄 푸른색 코트를 입었는데 이는 대관식 복장이다. 쿠션에 기대 팔로 얼굴을 괴고 있는 왕의 모습은 편안함을 강조하면서 그의 관대함도 의미한다.

왕이 신하를 가리키는 오른손은 자비를 상징한다. 종교화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른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자비를 상징하는 데에서 비롯됐다. 왕 앞에 놓여 있는 가죽 표지 책과 무질서하게 놓인 서류들 그리고 동전은 노인이 젊은 남자들에게 붙잡혀 있는 이유를 나타낸다. 그렇다, 이 작품은 성경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용서하지 않은 종의 비유’는 마태복음 18장 23절부터 35절까지에 나오는 말씀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 성경에 따르면 한 신하가 국고금 조사 과정에서 1만달란트나 되는 막대한 빚을 진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왕 앞에 끌려 나온 늙은 신하는 빚 갚을 돈이 없었다. 당시 풍습으로 그가 가진 모든 소유의 재산을 팔아서 빚을 갚아야만 했다. 신하는 왕의 발치에서 ‘내가 다 갚겠습니다’라고 엎드려 빌며 간청했다. 이에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그 엄청난 빚을 탕감해주었다. 그런데 용서를 받은 신하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소액의 빚을 진 친구를 만났다. 그는 갚겠다는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빚진 돈을 받을 때까지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 소식을 들은 왕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친구를 불쌍히 여겨야 할 것 아니냐”며 그 신하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넣으라고 명령한다.

비뇽은 이 작품에서 신하가 국고금을 탕진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탁자에 놓여 있는 동전과 책 그리고 서류를 무질서하게 배치했다. 또 그는 신하의 팔을 잡은 젊은 남자들의 미소로 왕의 자비를 강조하고 있다.

남을 비판하는 일처럼 재미있는 일은 없지만 나에게 관대한 사람일수록 실수가 많은 법이다. 남을 보면서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올바름만 강조해서다. 남을 비판하는 일은 심심한 날에 소소한 재미일 수 있지만 남의 처지를 비난하기에 앞서 나부터 잘해야 한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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