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성공한 사람은 감칠맛이 난다

쌍기역 단어‘꿈, 끼, 꾀, 끈, 깡, 꼴, 꾼’… 유명인사 8인의 感七맛 인생키워드 화제

지난해 서울 여의도의 한 고급호텔 일식당.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기자를 상대로 의미심장한 요구을 던졌다. 그는 “퀴즈를 내겠다. ‘ㄲ’으로 시작하는 성공조건 7가지를 대보라”고 요구했다. 20여 명 기자가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전전긍긍하자 그녀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바로 ‘끼’ ‘깡’ ‘꼴’ ‘꾀‘ ‘꾼’ ‘끈’ ‘꿈’”이다. 이 모든 것이 갖춰지면 ‘꽃’이 된다.”

박 전 대표가 얘기하는 7가지 성공조건은 무엇일까. 또 모든 것이 갖춰지면 된다는 꽃은 무슨 뜻인가. 유력 대권주자의 발언인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법이다.

우선 꽃의 의미를 캐기 위해 7개의 성공법칙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궁금증을 풀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출판기획 전문집단 ‘서울출판정보’가 최근 대학생 300명(남 194명, 여 106명)에게 이메일 설문조사를 벌여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 명사 8명에게 ‘꿈’ ‘끼’ ‘꾀‘ 등 어울리는 성공키워드를 짝 찌워보라고 주문한 것이다. ‘감칠(感7)맛 전략’(이동조 지음·동아일보사 펴냄) 출간을 기념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은 거침없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꿈’(26.9%)을,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겐 ‘깡’(32.1%)이라는 단어를 꿰어맞췄다.

8인의 성공키워드도 각양각색이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꾼’을 선택한 사람(27.6%)이 가장 많고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안철수 전 소장, 박지성 선수의 경우 ‘끼’(24.3%) ‘꿈’(31%) ‘끈’(26.9%)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꼽혔다. 이 밖에 배우 문근영, 가수 보아의 경우 응답자의 43.3%와 57.8%가 ‘끼’라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꿈’ ‘끼’ ‘꾀‘ ‘끈’ ‘깡’ ‘꼴’ ‘꾼’ 등 일곱 단어는 목표, 재능, 기획, 인맥, 추진력, 이미지, 프로페셔널 등을 상징한다.

노대통령은 꿈, 꾀, 끈 이미지 순

저자 이동조씨는 1999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열린 언론사 관계자와 모임을 떠올린다. “쌍기역으로 시작하는 한 글자 단어를 찾아보자”는 동료의 제안에 고구마 줄기처럼 단어가 줄줄이 달려나왔다. “와~” “맞아!”라는 환호성도 절로 터져나왔다. 이씨는 “한바탕 웃고 헤어진 다음날까지도 단어들이 여전히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대학문화신문’에 연재될 만큼 ‘7가지 쌍기역 키워드의 성공전략’은 인기를 끌었다.

국어사전은 ‘감:칠-맛’〈명사〉을 가리켜 ‘음식을 먹은 뒤에도 혀에 감기듯 남는 맛깔스런 뒷맛’ ‘사람의 마음에 휘감겨 여운을 남기는 사물에 담긴 묘미’라고 설명한다. 최근 네티즌 사이에선 ‘성공의 7단계 또는 7가지 깨달음을 가리키는 신조어’로 회자되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은 감칠맛이 난다’는 식이다.

설문조사에 나타난 저명인사의 키워드를 꼼꼼히 분석해 보면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최고 키워드는 ‘꿈’이다. 꿈은 비전이자 목표를 뜻한다.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고졸학력에도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대전지방법원 판사와 13, 15대 국회의원,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결국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바로 ‘꿈’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 노 대통령도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행복한책읽기)에서 “나는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눕히는 갈대로 살기보다는 내 주장을 당당히 내세우고 또 주어진 삶을 스스로 변화시키기 위해 도전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그는 “세상의 일반적 잣대로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상고’출신으로 작금의 현실이 화젯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어느새 내 자신이 ‘성공시대’ 주인공이라도 된 듯 착각하고 있을까”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삶은 정가에서 ‘시지프의 신화’에 비견될 만큼 꿈을 이루는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노 대통령에겐 2~3위 항목에 꾀(19.8%)와 끈(19.4%)이 올라 있다. 기획력과 인간관계에도 높은 점수가 매겨진 것이다. ‘정치 승부사’로 수식된 정치인의 면모, 개혁세력 결집으로 대변된 인맥에도 관심이 쏠린 셈이다. 반면 깡은 11.2%(5위)에 그쳤다. 배짱을 뜻하는 깡에 낮은 수치가 나와 한때 정혜신 박사(정신과 전문의)가 노 대통령을 가리켜 “배짱있는 사람과 바보는 구별되어야 한다”며 높은 점수를 준 것과도 상반된다. 꾼(전문성· 3.3%)과 끼(재능· 2.2%)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젊은이들이 현직 대통령에게 타고난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거의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전시장 깡, 끈에 높은 점수

사실 이번 설문조사는 단순한 의견취합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치인에겐 더욱 그렇다. 유권자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대학생들에게 비친 이미지인 탓이다. 따라서 이번 설문결과는 예비 여론조사로 차기 선거전략을 짜는데 유용한 변수다.

이런 의미에서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성공키워드는 다양한 함의를 품는다. 일단 깡(32.1%)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깡은 실행력 또는 추진력을 의미한다. 구상에 머물지 않고 몸으로 부딪쳐 적용시키는 것을 이른다. 청계천을 단번에 바꿔버리는 이 전 시장의 추진력에 높은 점수가 매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이 전 시장은 서울시장 재직시절 ‘깡’과 관련된 일화 2개를 남겼다. 서울 지하철 파업으로 뒤숭숭할 때 시청 국장급 간부를 일제히 군부대로 보내 전차운전 훈련을 받게 했다. “전차를 몰 줄 알면 지하철도 몰 수 있다”는 이유였다.

다음 사례는 청계천 사업과 관련된 것이다. 성난 철거민과 상인이 화염병과 기름을 가득 담은 드럼통을 놓고 위협했지만 눈 하나 깜짝 안했다. 시청 관계자는 “뜻을 굽히지 않고 동대문운동장을 노점상을 위한 풍물시장으로 전환시켰다”고 전했다.

동지상고-고려대-현대건설로 이어지는 인맥은 인간관계(끈· 21.3%)에 높은 점수를 남겼다. 6·3동지회, 로타리클럽, 항만협회에서 국악협회까지 폭 넓은 사회활동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꿈(6.3%)과 끼(5.2%)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로 남았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인데다 고대 경영학과 출신임에도 목표달성력과 재능이 젊은이들로부터 과소평가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최대 재벌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겐 꾼(27.6%)이라는 키워드가 주어졌다. 전문가 정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이미지와도 어울린다. ‘김밥도 삼성이 만들면 잘 팔릴 것’이라는 말처럼 선택과 집중을 앞세운 매크로 경영으로 이 회장은 삼성을 일본의 소니를 누른 최초의 한국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2위와 3위에 각각 꿈(18.3%)과 깡(16%)이 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사실 이 회장은 달변가가 아니다. 어눌하며 즉흥적으로 지시하는 일도 없다. 삼성 관계자들은 “대충 생각하고 대충 기억하는 것도 아주 싫어한다. 문제의 밑바닥까지 완전히 꿰고 있어야 비로소 인정하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임원들은 이 회장이 참석하는 회의에선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는 게 불문율일 정도다. 반면 끼(재능)라는 답변은 2.4%에 그쳤다.

이밖에 한국 벤처사에 한획을 그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은 벤처의 황제답게 꿈(31%)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끈(22.8%)과 꾼(20.1%)도 무시할 수 없는 키워드. ‘안철수’라는 이름 석자로 브랜드를 창출한 만큼 대학생 사회에서 정치인 노 대통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1995년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해 바이러스 솔루션 V3 시리즈를 선보이며 벤처신화를 일궜기 때문이다. 이후 보안 컨설팅, 웹 기반 보안 사업, 해외 진출 등 사업은 점점 커졌고 이제 회사는 세계 속의 보안업체로 자리잡았다. 덕분에 늘 대학생들이 뽑은 존경하는 벤처인 순위 상위권을 달리곤 한다.

방송인들은 역시 끼가 압도적

현재 그가 맡은 직함은 크게 3가지.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포스코 사외이사, 고려대 겸임교수다. 이는 사회성을 뜻하는 끈에서 높은 수치를 나타낸 이유다. 의학박사 출신 벤처인 답게 꾼(전문성)으로도 인정받았다.

축구스타 박지성의 키워드는 끈(26.9%)과 깡(25.7%)이다. 이중 배짱과 오기를 뜻하는 깡은 운동선수로서 필수 덕목. 하지만 네트워크십을 의미하는 끈은 의외다. 맨체스터에서 ‘산소탱크’로 통하는 박지성의 원래 별명은 ‘미키마우스’. 귀여운 외모 못지 않게 활달한 성격 덕분이다. “공격형 MF로 나섰을 때 중원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대표팀 경기를 직접 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는 게 스포츠지 기자 사이의 통설이다. 그의 끈이 팀워크로 해석될 수 있는 이유다. 유난히 내성적인 그가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고 해외진출에 이르기까지 허정무, 히딩크 등 은사를 잘 활용한 것도 또 다른 끈의 관점이 될 수 있다.

방송인 출신 손석희 교수와 가수 보아, 배우 문근영에겐 모두 최고 성공 키워드로 ‘끼’가 주어졌다. 끼는 타고난 능력, 자신만이 가진 재능이나 무기를 뜻한다. 저자 이동조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자신만의 차별화된 끼를 발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아나 문근영은 끼 항목이 57.8%와 43.3%에 달할 만큼 절대적이다. 꿈도 각각 11.2%와 24.6%로, 자신만의 재능으로 목표를 이룬 연예인에겐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가수 보아는 최근 인터뷰에서 “유치원 때 타임캡슐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적어 넣었다”는 일화를 밝혔다. 꿈을 이룬 그녀는 “이제 조용필 선배처럼 평양가서 공연하고 싶다”는 또 다른 꿈도 내비쳤다.

외모를 뜻하는 꼴에서 높은 수치(20.1%)를 기록한 문근영도 최근 연예담당 기자에 자신의 털털한 성격을 공개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터프한 왈가닥 소녀였다.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대신 짝사랑하는 남학생을 괴롭혀 결국 울려버렸다”는 일화를 털어놓은 것. 이런 그녀가 인간관계를 뜻하는 끈에서 최저수치(0.7%)를 얻은 것은 의외다.

조명

꿈과 끼와 꾀와 끈…. 결국 사석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던진 농담에는 감칠맛 나는 삶에 대한 염원과 함께 차기 대권주자로서 ‘완벽한’ 성공에 대한 바람이 담겼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상도 기자 sdo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