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탕! 권력게임 총성 울렸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국회 대표연설 있은 10월 14일. 본회의장을 나서던 통합신당 김근태 원내대표가 불쑥 던진 화두다. 특유의 알쏭달쏭한 미소 속에서 거대 '3야연합'에 주눅들기는커녕 은근히 반기는 김 대표의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좀체 보기 힘든 '정치인 김근태'로서의 묻어둔 승부기질이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정치권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치권 판 자체를 뒤집어 다시 주도권을 쥐려는 고도의 전략"(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라는 분석처럼 정치권의 시계추는 재신임 카드를 던진 노 대통령의 계산대로 째깍째깍 움직여가는 분위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이 급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고 통합신당은 예상 밖의 재신임 여론 강세와 개혁 세력 재결집의 흐름 속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고 있다. 특히 지지층을 놓고 '제로섬게임'을 벌여야 하는 통합신당과 민주당은 이제 '묵은 인연'까지 끄집어내며 일전을 예고했다. 정치권은 지금 칠흙의 밤을 지나 새로운 미명의 새벽으로 접어드는 중이다.

빨라진 창당 발걸음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이미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사상 초유의 비주류 정권의 등장과 기묘한 '여소야대'의 권력지형이 지닌 '불안정성' 때문이다.

통합신당은 바로 그런 예측의 결과물. 하지만 분당책임론에 발목을 잡혀 궤도를 헛돌다 이제야 창당을 향해 잰걸음을 옮기는 상황이다. 당초 12월 초로 예정된 중앙당 창당을 무려 한 달이나 앞당긴 11월 9일로 잡았다. 당장 10월 27일에는 사실상 법적 정당인 창당준비위가 뜬다.

당 밖의 개혁 세력과의 통합문제도 가닥을 잡았다. 재신임 정국의 위기가 당직 문제와 공천 방식 등 통합 과정에서 필연적인 진통을 모두 잠복시켜버렸다. 김부겸 의원은 "공천 문제 등은 나중으로 미루고 개혁 세력이 뭉치자고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해찬 의원도 "재신임 정국에서 찬반운동 등 청와대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야 하는 긴박한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0월 1일 시작 후 미지근하던 창당 발기인 모집은 노 대통령의 폭탄선언 이후 바람을 탔다. 통합신당이 발빠르게 "재신임 정국 돌파를 위해 신당 발기인이 되어달라"(정동영의원)고 노사모 등 노 대통령 지지층 흡수에 나선 효과다. 'e(사이버)-발기인'의 경우 하루 평균 70여 명 정도이던 것이 하루 200~300명 이상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한 핵심 관계자는 "내달 창준위 출범을 전후해 민주당에서 호남을 포함 지역구 의원 4~5명의 추가 탈당이 있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당 주변에서는 '호남 3합' '강원 4합' '수도권 3합' 등 추가 민주당 탈당 의원의 실명이 공공연히 거명되는 상황이다.

3야 공조 역설적으로 창당의 에너지는 3당 공조가 제공하고 있다. 바로 "두 당이 정략적 야합을 할 경우 국민에게 부패정치가 뭔지 뚜렷하게 보여주고, 내년 총선이 야합 세력과 개혁 세력의 대결로 단순화돼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다"(통합신당 김영춘 의원)는 분석이다. '최-박 회동' 다음날인 10월 14일 통합신당측이 "두당은 공조하는 순간 반개혁, 부패-은폐 집단으로 몰리게 된다"(박양수 의원), "최병렬-박상천 대표의 비밀회동은 낡은 세력의 밀실-야합-음모정치의 전형"(정동채 의원)이라고 날을 세운 것도 그런 이유다.

결국 화연이 감돌던 뇌관에 불을 붙인 것은 민주당인 셈. 특히 최 대표와의 회동에 이어 민주당 박 대표가 10월 15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국회 과반수 연합에 내각 구성권을 주는" 책임총리제 실시를 주장, 논란을 증폭시켰다.

통합신당은 즉각 이반한 호남 지지층과 진보 세력을 향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위험한 불륜(?)'을 부각시키는 데 힘를 쏟았다. 김원기 주비위원장은 "차라리 공조하지 말고 한 당으로 합당하는 것이 혼란을 안 주고 선명하다"고 꼬집었다. 이평수 공보실장은 박 대표의 연설에 대해 "한나라당 대표 연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며 "반개혁-부패정치 세력이 신3당 야합을 획책하는 러브콜"이라고 비난했다.

재신임 국민투표 카드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불신임으로 당론을 정할 경우 호남 민심 동요가 가속화될 우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민주당의 곤혹스런 처지를 계산에 넣은 것이다.

박 대표측은 "과반수 연합 이야기는 노 대통령이 밝힌 것처럼 무조건 제1당에 (총리를) 주지 말고 총선 결과에 따라 민주-통합신당 연합에 줄 수도 있다는 암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 일고 있는 "이럴 바엔 다시 합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볼멘 소리도 잠재우지 못했다. 한 잔류 중도파 의원은 "신당 쪽에서 27일 창준위 출범 이전까지를 합류의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다는 말이 돈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종착점은 어디에 하지만 민주당의 운명과 직결된 '3당공조'는 현재로선 지극히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박 대표는 10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뿌리와 노선도 달라 (한나라당과의) 연대는 불가능하다"며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우리의 제1경쟁 상대인데 공조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진화에 나섰다.

김충조 의원은 아예 "3야 회동에 불만이 많다"며 "당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는데 의원들과 논의해 공조를 하든 말든 해야지, 몇 사람만 쑥덕거려 될 일이냐"고 쓴소리를 했다.

또 민주당이 바라는 분권형 대통령제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재신임이 무산될 경우 권력의 향배가 '주류 보수권'으로 쏠릴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형근 의원 등 강경파의 국민투표 '강행론'과 소장파의 '신중론'으로 내홍을 앓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최 대표는 박 대표와 회동한 이튿날 대표연설에서 "나라 경제가 어렵고 국정도 불안한 이때에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사실상 개헌 논의를 거부했다.

차라리 민주당의 조기 지도체제 개편이나 분열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당 일각에선 재신임 정국에서 말을 아껴온 한화갑 전 대표가 조만간 중대선언을 할 것이란 설까지 떠도는 가운데 중도파는 조기전대 요구로 박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당내 비상대책위 총괄간사인 강운태 의원은 11월 27일쯤 전당대회를 열자는 비대위 의견을 박 대표에게 전달했다. 박 대표는 "지금 시기를 특정하면 중요한 정국에서 (지도부가) 힘을 못 받게 되는 만큼 구체적 시기를 적시하지는 않겠다"고 버티는 형국이다.

재신임이 몰고온 폭풍의 밤이 지나면 새벽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노무현은 지더라도 국민은 늘 승리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비장한 변처럼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 승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김광호〈정치부 기자〉 lubof@kyunghyang.com